배화교회 예배에 처음 참석한 감격의 날, 오후에는 사순절을 위한 연합 속회가 있었다. 예쁘게 디자인된 사순절 안내문 첫 페이지에는 죄송하게도 눈이 가지 않았고, 오로지 다음 페이지의 여러 개의 질문 아래의 빈칸을 보며 이걸 또 어떻게 쓰고, 어떻게 나눠야 하느냐는 두려움에 빠져있었다. 그동안의 사순절이면 커피 줄이기, 텔레비전 시청 줄이기 등의 평소에 좋아하는 것을 줄이는 결단했었기에, 이번에는 또 무엇을 해야 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이번의 질문은 달랐다. 질문지의 작은 글씨가 생각의 방향을 정해주었다. ‘자신의 변화를 위해 할 일, 가족을 사랑하기 위해 할 일, 주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할 일’ 이 또한 답을 쓰기에는 쉽지 않았지만,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썼던 나의 결단은… -가방에 뱃지를 달고, 보면서 수시로 아침 기도와 말씀 기억하기(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할 일) -등교 2시간 전에 일어나서 기도시간 갖기(자신의 변화를 위해 할 일) -엄마에게 하루에 한 번 이상 친절하게 대답하기(가족을 사랑하기 위해 할 일) -등하교할 때 대중교통에서 서두르지 않기(주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할 일)
내가 하려는 행동은 매우 사소한 것이고, 어쩌면 그동안의 결단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목적이 달랐다. 그동안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편하게 행동했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사소한 것을 이 기회를 통해 주님과 함께 해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바로 그 상황을 맞닥뜨릴 때, 잊을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저녁에 스티커를 붙여야 하기에, 실수했더라도 다시 수정해서 말하고 행동해야 했다.
학교에서 강의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내 옆자리에는 뱃지를 달고 있는 가방이 같이 앉아있다. 뱃지를 보면서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무슨 기도를 했지? 오늘 손묵에는 어떤 말씀을 썼지?’ 그리고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내가 종이에 꾹꾹 눌러 썼던 세 가지가 한 번 더 생각났다.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이번 주 아침 기도문에 있는 구절이다. 이 기도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을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에 기도하면서 이 구절의 의미를 다시 발견했다. 지난 일주일을 돌아봤을 때 뿌듯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이 바로 이 구절과 관련이 있었다. 얼굴은 알지만 낯선 학교 원우들과 대화를 할 때, 그것이 단순한 필요를 위한 대화일지라도, 나는 의도적으로 친절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기위해 힘을 썼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품었던 자발적인 용기에 신기해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은 내가 아침에 기도했던 것을 주님과 함께 살아냈던 것이었다.
‘날마다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이렇게 주 예수님과 함께 걷다 보면 나도 그리고 내 주변도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 아닐까.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사순절 동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같이 힘쓰고 있을 배화가 있으니, 또한 더 즐거운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