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존감이 높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존감’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이다. 이 기준으로 생각해보니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표현보다 ‘언제든 바닥으로 곤두박칠 치려는 내 자존감을 붙잡아 세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설명이 더 적절하다.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자존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공부와 연구, 고민을 통해 타인의 위로나 칭찬만으로는 ‘자존감’을 키울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흔히 사람들은 건강한 자존감은 부모, 혹은 주변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낮은 자존감은 자신에게 상처 준 타인, 또는 불행한 환경 때문이라고 여긴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핵심이 빠져있다.
나는 진짜 건강한 자존감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나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내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주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나는 더욱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니 다시 지치기 시작했다. 심리학과 철학책들을 읽어도 잠깐의 위로를 얻을 뿐 본질에 닿을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질질 끌려가서 시작하게 된 성경공부를 통해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답을 얻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이사야64:8)”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도공이 정성스럽게 진흙으로 도기를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빚으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세상을 만드셨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드셨다. 모든 것은 주가 만드셨다. 나도, 남도 언제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생기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 그중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모습이다. (나는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들도 그렇다. 내 아이의 성향을 받아들이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연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습관을 들이면 늘 익숙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계속해서 고군분투하며 그 마음을 붙잡으려 애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내 과거의 약점과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 내 주변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에 도전한다. 그래서 더 기도한다. 오늘도 ‘받아들이는 연습’을 잘 하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