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해외 영업이라는 직업 특성상 비행기를 탈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짧게는 4시간에서 길게는 11시간까지 비행기를 타게 되는데, 몸은 많이 힘들지만 몇 가지 저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맘편히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린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5년 동안 저와 제 아내의 삶에서 영화라는 여가 활동은 선택 가능한 목록에서 일찌감치 삭제되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는 방해하는 사람 없이 조명도 어둡게 조정해주고 원하면 음료수나 과자도 제공해주니 제법 영화관 느낌으로 나름 최신의 개봉작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작은 모니터와 불편한 의자가 답답하긴 하지만 집에 혼자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절대 불평할 수 없지요. 감사한 마음으로 보통 한번 비행에 2~3편의 영화를 몰아서 보곤 합니다.
올해 비행기에서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어벤져스-엔드게임 이었습니다. 영화 자체로 재미있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그동안 잊어버린 줄 알았던 하나님을 다시 만난 의외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들인 어벤져스는 전편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 큰 실패를 맛봅니다. 그리고 엔드게임에서 과거로 돌아가 실패를 바로 잡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본 뒤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만일 과거로 돌아가서 예전의 나를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어느 과거로 돌아가야 할까?
저에게 있어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20대 시절입니다. 돌아보면 그때의 제 삶은 참 힘들고 어두웠습니다. 대학생으로서 학업도 인간관계도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고, 늘 무기력하고 항상 고민에 빠져 스스로에게 한없이 비관적인 태도로 현실을 회피하며 살았죠. 가늠조차 할 수없는 깊은 늪 속으로 삶이 계속 침전하는 느낌. 총체적인 난국이었습니다. 자, 드디어 38살의 내가 24살의 청년 김용석을 만났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분. 어떻게 해야 과거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출퇴근길 전철 속에서,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습니다. 정신차리라고 뺨이라도 때리며 혼을 내줘야하나,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의학전문대학원을 알아보라고 해야하나, 로또 번호라도 알려줄까, 너의 짝은 지금 제천에 있으니 연애 걱정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때의 저는 무슨 말을 해도 알아먹을 것 같지 않더군요. 난감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럼 24살의 나와 지금 나의 차이가 뭘까? 단지 인생의 경험치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본질적인 나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여전히 고민이 많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어느 특정 부분이 나를 불편하게 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렀을 때 저는 사실 꽤나 절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아이언맨 토니가 과거에서 처음 만난 그의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합니다. “다 잘될 겁니다, 모든게 다 감사드려요.”
결국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한 것 같고 종종 스스로에게 좌절하지만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받쳐주고 계시다, 그렇기에 나의 삶은 오늘도 그분 안에서 안전하다는 확신.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여러 좋은 일 나쁜 일들로 인생의 그래프는 오르락내리락 하겠지만 예전처럼 끝없이 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사실 그것이 제 신앙의 출발점이었고 내가 만난 하나님이었는데, 하나님은 기도 잘 안하는 저에게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그분을 드러내셨습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말은 곧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제게 주시고 싶은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괜찮다. 네 삶은 내 안에서 안전하단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더 큰 꿈, 더 가치있는 일을 위해 살아가렴.”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가 본 1400만분의 1의 확률보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더 큰 축복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며, 다시 찾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그 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62편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