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5일
드디어 오늘, 라오스로 출발하는 날이다. 이제까지 준비하면서 도대체 출발 날짜가 언제 올까 하고 막연히 기다렸는데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아침 10시부터 배화교회 캠벨홀에 모두 모였다. 10시에 모두 모여 ‘덕짬빠‘라는 우리가 준비해 왔던 라오스 전통 노래를 연습한 뒤에 11시에 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간에 우리 라오스 봉사팀이 나와서 특송으로 덕짬빠를 불렀다. 많이 연습했는데도 약간 맞지 않는 감이 없지 않아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생전 처음 들어본 낯선 언어의 노래를 이렇게 까지 불렀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강나영 학생이 대표로 파송장을 받았고, 총장님께서 한 명 한 명 손을 잡아주시며 우리를 격려해 주셨다. 예배가 끝난 뒤엔 모두 단체사진을 찍었고, 그 뒤에 모두 식당으로 가 교회에서 준비해 주신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예배가 끝난 뒤엔 학생들끼리 필운관 지하1층에 모여 전신갑주 율동 연습을 했다. 팔 동작 순서가 헷갈려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김예린 학생이 1대1로 봐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줘서 모두 정확한 순서를 숙지할 수 있었다. 연습이 끝난 뒤엔 2층 기도실로 올라가 봉사활동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짐을 점검하고 준비물을 싸는 시간을 가졌다. 이 때 다시 한 번 짐 무게를 체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소름끼치게도 짐이 정말 15kg을 벗어나질 않아 박진성 선생님이 짐을 싸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느껴졌다. 짐 무게 체크를 마친 뒤 저녁식사를 하러 다시 식당으로 내려갔다. 분식집에서 시킨 떡볶이, 튀김, 순대, 오뎅과 만두 라면을 먹었다. 가기 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는데 너무 맛있었고 혹시나 가기 전에 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조심스럽게 먹었던 것 같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짐을 챙겨 인천 공항으로 향했고, 진에어 9시 10분 비엔티엔행 밤비행기를 타고 라오스로 출발했다.
2017년 2월 6일 월요일
어젯밤 인천공항 9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 시간으로 3시 30분, 현지 시간으론 1시 30분경에 라오스 비엔티엔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모두 사진을 찍고 얘기하면서 오다 보니 도착하고 난 뒤 모두 조금은 지쳐 있었다. 현지에 계시는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비엔티엔에 있는 흐앙짤런 호텔에 도착했다. 사전에 미리 뽑은 숙소 인원들로 방을 배정받고 취침하기로 했다. 라오스에 빈대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미리 구입해뒀던 진드기 패치를 매트리스에 붙이고, 하스피가 준비해준 모기 스프레이를 온 몸에 뿌리고 취침에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 난 뒤 호텔에서 준비한 조식을 먹었다. 토스트가 정말 맛있었고 한국과 달리 밥이나 빵에 찰기가 없어서 신기했다. 아침을 먹은 뒤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갔다. 1층은 카페, 2층은 발레학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라오스에 생긴 최초의 발레 학원이라고 하셨다. 1층과 2층을 구경하고 난 뒤 망고주스를 먹으며 선교사님의 라오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전 세계에서 불발탄이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하셨다. 또한 불발탄 때문에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셨다. 현재 모습은 우리나라 8,90년대 모습이며 최근 5년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하셨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카페가 굉장히 생소한 형태의 가게였는데 최근엔 이보다 더 좋은 카페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셨다. 최근에 베트남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라오스도 그런 나라들 중 하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을 듣고 난 뒤, 툭툭을 타고 cope라는, 불발탄의 피해로 인해 걷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족과 의수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의 전시장에 방문했다. 안에는 여러 의족과 의수가 전시되어 있었고 불발탄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영상과 이를 알리기 위한 영상도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미국이 투하한 폭탄 중 미폭팔물의 약 30% 정도가 아직 라오스에 남아있고 그 양이 8000만 개나 된다고 한다. 이를 제거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서 하고 있긴 하지만 매년 폭탄으로 숨지는 사람과 장애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전쟁의 아픔이 있는 나라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아픔을 겪고 있는데 라오스도 그런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동질감이 느껴졌고 사람들을 대할 때 이 부분에 있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을 나온 뒤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식당에 가는 도중 가게에 들려 페인트와 모자를 샀고 Phozap이라는 쌀국수 집에 도착했다. 라오스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맛 집이라고 하는데 소문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쌀국수와 고수, 그리고 많은 야채들이 함께 나왔는데 향이 강해서 먹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 야채들을 먹으면 모기에 덜 물린다는 말에 최대한 많이 먹으려 노력했다. 유명한 맛 집답게 국물이 정말 맛있었고 전도사님은 입에 맞으셨는지 2그릇이나 드셨다. 점심을 먹은 뒤 우리가 봉사 활동할 학교에 처음 도착했다. ‘폰싸왓느와‘라는 이름의 초등학교였다. 도착하니 우리가 신기한지 아이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 역시 처음으로 봉사 활동할 학교에 도착한 거라 많이 설레이고 긴장됐다. 도착한 뒤 일단 벽화 작업을 먼저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저 벽만 칠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철창과 벽을 함께 칠하는 작업이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또한 한국에서 부피 때문에 페인트 통을 놓고 왔는데 페인트 통이 필요한 상황이 오게 되어 가져오지 않은 게 후회되었고, 철창을 칠하는데 붓만으로는 세심하게 칠하는데 한계가 있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마스킹테이프를 굳이 준비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고 바닥에 까는 비닐도 필요치 않게 되었다. 모두 열심히 준비한 준비물들인데 막상 와서 쓸 수 없다고 생각하니 허무한 생각도 들었고 역시 막상 현지에 오면 여러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모두 다 ’힘내자!’란 분위기 속에 각자 맡은 역할들을 열심히 해나갔다. 벽화 팀이 벽을 칠하고 있는 사이에 김예린 학생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현지 아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나뭇잎을 주워서 바구니에 누가 더 많이 줍나 놀이를 비롯하여 얼음땡 놀이도 하고 아이들이 심심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하나, 둘, 셋 하고 뛰어!‘하고 노는 우리나라 놀이를 라오스어인 ’능, 썽, 쌈, run!‘으로 바꿔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었다. 아이들 모두 너무나 즐거워해주었고 아이들이 김예린 학생을 졸졸 따라다니는 게 신기했다. 또한 다른 나라 아이들을 이렇게 까지 이끌 수 있다니 김예린 학생의 친화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지에 맞게 여러 가지 놀이를 생각해 생각해내는 응용력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너무 순수하고 맑았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마친 뒤에 ’아리랑‘이라는 한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오리불고기였는데 현지에서 입맛에 불편함을 느낄 우리들을 위해 목사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신경 써서 준비하신 게 느껴져 감사했다. 라오스에서 오리불고기 같은, 한국에서도 자주 먹지 않던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식사를 하기 전에 ’사랑의 마음‘이라는 찬양을 불렀는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모두를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시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내일도 무사히 봉사 활동을 마칠 수 있길 바란다.
2017년 2월 7일 화요일
오늘은 7시부터 어제와 같이 호텔 조식을 먹고, 7시 40분에 폰싸왓느와 초등학교로 출발했다. 학교로 도착한 후 어제 하다 만 벽화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했다. 페인트 붓만으론 세밀한 채색이 힘든 점을 보완하기 위해 검정색 라카를 구입하여 미처 칠해지지 못한 부분을 메꿔갔고, 김수연 학생의 아이디어로 라텍스 장갑에 페인트를 묻혀 손으로 철창을 칠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수연 학생은 상황에 맞춰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철창을 칠하는 작업이 마냥 막막하기만 했는데 두 번째 작업이다 보니 보다 쉽게 느껴졌고 또 보다 숙달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페인트칠은 힘들었고 날씨 또한 더웠다. 벽화 팀이 페인트칠을 하는 동안 공예 팀은 오후에 있을 공예 부스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3-4시간에 걸쳐 오전 페인트칠을 마친 뒤에 폰싸왓느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집에 방문해 점심을 먹었다. 고생하는 우리를 위해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준비했다고 하셨다. 메뉴 중에 김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김과는 달리 푸석하고 딱딱했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라 강에서 채취한 미역으로 만들었다고 하셨다. 같은 종류의 음식인데도 나라마다 맛이 다르고 식감이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김 외에도 야채볶음, 찰밥, 똠양꿍 등이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식사로 먹는 음식을 현지인의 집에서 대접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선교사님 설명으론 라오스 사람들은 밥을 손으로 뭉쳐서 먹는다고 하는데 그것까진 생소해서 시도해보지 못했지만 현지의 식습관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곤 다시 학교로 돌아와 우리가 전부터 준비한 공예부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교실 4개를 30분 간격으로 돌아가며 부채, 팔찌, 사탕꽃다발, 페이스페인팅 부스를 운영하였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주었다. 부채 팀은 곰돌이, 하트, 여우, 토끼 등 다양한 모양의 무지 부채와 네임펜, 스티커 등을 준비해 아이들이 직접 부채를 꾸밀 수 있게 하였는데 아이들이 특히나 하트 모양 부채와 빨간색 네임펜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에 아이들이 네임펜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한 자루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돌아와 감동했다고 한다. 팔찌 부스는 강지연, 김예린 학생과 가비, 라일리라는 이름을 가진 2명의 외국인 학생이 함께 운영했는데 구슬이 작고 여러 개인 것도 모자라 책상도 평평하지 않아 아이들이 산만해지고 구슬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걱정과 달리 아이들이 너무 잘 따라줘서 놀랐다고 한다. 사탕부스는 아이들이 사탕이나 리본 빵 끈 같이 어린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많이 가지려고 욕심 낼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을 욕심내지 않고 차례로 줄 서서 받아가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한다. 페이스페인팅 부스는 미리 준비해간 도안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아이들이 그림이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너무 즐거워하고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아이는 고양이를 흉내 내는 등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했다고 한다. 이번 공예 부스를 운영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아이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 이었다. 남을 쉽게 믿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게 되어버린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을 보니 우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든 점도 있었지만 현지 선생님들과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무난히 해결해 나간 것 같다. 그래도 다음부턴 해외 봉사활동을 준비하기 전에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갈 지에 치중하기 보단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 나라의 언어를 하나 더 배워가려 하기 보단 그저 어떤 부스를 하나 더 늘리면 좋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한 게 아닐까 라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우리가 진심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에 후회는 들지 않는다. 이렇게 봉사활동이 끝이 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고기 뷔페에 갔다. 봉사활동에 지친 우리를 위해,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고기 뷔페를 예약해 주신 선생님들과 선교사님들께 감사했다. 다양한 고기들과 해조류, 야채, 과일 등등 다양한 음식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한국인 분이 운영하시는 식당이라 더 우리 입맛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곤 라오스의 설빙인 카페 크림에 도착해 빙수를 시켜 먹었다. 맛은 한국보다 별로였지만 한국에서 먹던 인절미 빙수를 라오스에서도 먹게 되다니 신기했다. 또한 이곳에서 목사님이 유심 칩을 갈아 끼워 주셔서 정말 감동했다. 그 동안 호텔 외부로 나오면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답답했는데 그런 우리를 위해 유심 칩을 구해 오셔서 일일이 다 갈아 끼워 주셨다. 유심 칩을 도대체 언제 사러 가는 거냐며 불평했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디저트까지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오늘은 봉사활동 일정이 고되기도 했고, 내일이 봉사활동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전체 회의를 생략하기로 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일찍 씻고 자기로 했다.
2017년 2월 8일 수요일
오늘은 봉사활동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안 좋은 일이 하나 터졌다. 오늘의 봉사활동인 체육대회에 대한 의견 공유가 이뤄지지 않아 선생님들과 학생들 간의 갈등이 생긴 것 이다. 체육대회 행사는 봉사활동 오기 전 계획 단계에서는 한 번도 말이 나오지 않은 활동이고 어제 밤인 화요일 저녁에 처음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나온 상태였다. 그것도 나머지 학생들은 아무런 계획도 모르고 있었고 김예린 학생만이 급하게 설명을 들은 상태였는데, 그 마저도 어제 저녁 늦게 들은 상황이기 때문에 미처 학생들에게 전달할 시간조차 없었다. 모두 봉사활동을 더 잘하고 싶고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갖게 해주고 싶은데 급하게 짜여 진 체육대회 일정과 납득하기 어려운 종목의 진행 방식, 거기다 불충분한 설명으로 불만이 생긴 상태였다. 라오스에 온 이후 유심문제, 환전 문제 등이 빨리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학생들 모두 불만을 가진 상태에서 이런 소통 문제까지 더해지니 학생들의 쌓였던 불만이 이번 사건(?)으로 터져 나왔다. 사실 어떤 모임에서든지 간에 몇박 몇일을 함께 지내게 되면 그 구성원들이 아무리 천사같은 사람들로 구성됐다 한들, 사소한 갈등과 불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이제까지 그 누구도 짜증내거나 큰 소리 높인 적이 없어서 좀 의아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드디어 뭔가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항의 이후 간사님의 설명이 이어졌는데, 학생들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점은 미안하지만 점심시간에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일정 소화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 정해진 체육대회 일정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언제든지 수정 가능하다고 하셨다. 이런 문제로 모두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우려되기도 하고 오늘의 일정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목사님께서 중재를 하셨고, 모두 기분 풀고 오늘 남은 일정을 열심히 해보자라고 결의를 다지며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학교에 도착한 뒤에 어제 철창을 칠하고 난 뒤 남은 벽을 하얀색 페인트로 칠하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철창 페인트칠을 끝마치고 하얀색으로 벽을 칠하는 작업만이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훨씬 수월했다. 넓은 벽을 롤러로 칠한 뒤 덜 칠해진 부분은 붓으로 메꾸고, 하얀색으로 얼룩덜룩해진 철창을 다시 검정색 라카로 칠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언제 이 담장을 다 칠하나 했는데 오늘 오전에 모든 벽화 작업이 끝이 났다.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드니 결국 끝이 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벽화 작업을 끝마치곤 교실에서 현지 선생님들이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라오스 요리들과 신라면, 샌드위치가 나왔다. 타지에서 컵라면을 보게 되니 반가웠고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을 현지인들이 먹는 모습이 신기했다. 라오스 사람들도 라오스 음식을 먹는 우리를 보는 게 신기했을까? 샌드위치가 라오스에서 유명한 음식이라고 하는데 샌드위치도 너무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운동회 준비를 시작했다. 김예린 학생은 아이들을 잘 통솔하고 재밌게 해주는 특기를 살려 사회를 보며 아이들을 한자리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그 동안 나머지 멤버들은 밀가루 사탕, 물 풍선 받기, 림보, 풍선 터뜨리기로 이뤄진 운동회 종목 준비를 했다. 체육대회는 밀가루 사탕을 먹은 뒤 바구니로 물 풍선을 받고, 림보를 한 뒤 엉덩이로 풍선을 터뜨리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실 이런 종목들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즐겁게 해줘서 놀랐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나의 관점에선 너무 재미없어서 아이들이 참여 안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많이 때 탔구나(?)라고 느꼈다. 운동회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덕짬빠를 불러주고 그 동안 연습한 전신갑주 율동을 보여주었다. 모두 열심히 했고 아이들이 환호해주었다. 아이들이 답례로 라오스 전통 춤을 보여주었는데 우리보다 훨씬 잘해서 부끄러웠다. 그 뒤엔 우리가 준비해온 학용품과 간식 선물을 해주며 아이들 한 명 한 명 안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헤어져야 할 때임을 알았는지 가지 말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볼에 뽀뽀를 해주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많이 든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손 하트를 만들며 아이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만나자는 작별인사를 한 뒤 차에 올라탔다. 차가 막 출발할 때 까지도 아이들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학교를 떠난 뒤, 숙소에 들려 간단히 씻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동남아 여행 중에 마사지는 필수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한 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은 동남아 뿐 이리라. 마사지를 받으니 피로가 풀리고 몸이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라 끝나니 너무 아쉬웠다. 마사지가 끝나곤 프랑스 식당에 가 프랑스 음식을 먹었다. 라오스에서 프랑스 음식을 먹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 와서 별별 나라 음식을 다 먹어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샐러드, 피자, 까르보나라,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플레이팅 까지는 완벽했지만 솔직히 맛은 없었다. 목사님께서는 너무 맛있다며 좋아하셨다. 식사를 마치곤 그토록 기다리던 야시장 투어를 했다. 라오스는 짝퉁의 천국이었다. 각종 명품 향수와 선글라스 짝퉁이 즐비했다. 우리나라에서 못 보던 광경이라 너무 신기했다. 그 외에도 코끼리 바지, 원피스, 가방, 그림, 샌들 등등 여러 가지 예쁜 것들이 많았고 모두 저렴했다. 여기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가방 한 개 쯤은 건진 것 같다. 짧은 야시장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도착한 뒤 모두 씻고 어제는 피곤해 건너뛰었던 전체 회의 시간을 가졌다. 목사님께서 오늘은 전체 회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끼셨던 거 같다. 전체 회의 시간에 목사님의 주도로 서로 칭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오늘 아침 약간의 껄끄러웠던 사건도 있고 그로 인해 약간이나마 어색해진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풀고 자 하셨던 것 같다. 회의 시간에 나왔던 칭찬에 대해 간단히 적어본다. 박진성 선생님에 대한 칭찬이 많이 나왔는데 진성 선생님께서 궂은일을 다 맡아서 하시고 물건 관리도 철저히 하심은 물론 학생들도 잘 챙겨주어 모두들 많은 고마움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강지연 학생은 페인트칠을 정말 열심히 했고, 항상 한결같은 표정으로 모두를 기분 좋게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예린 학생은 항상 모임의 분위기를 좋게 이끌어주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주어 고맙다는 칭찬이 나왔다. 김수연 학생은 오기 전부터 공예 물품 구입이나 티셔츠 준비를 도맡아 하고 라오스에 온 뒤에도 사람들을 웃겨주고, 사진을 잘 찍어 모두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줬다는 칭찬이 나왔다. 나는 부끄럽지만 분위기 메이커역할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고, 박유진 학생은 맏언니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착해서 동생들이 다가가기 편하게 해주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목사님께서는 바지 엉덩이 부분에 페인트가 묻어있는 것도 모르신 채 열심히 페인트칠을 하신 모습이 멋지면서 안타깝기도 했다는 웃픈 소리를 들으셨다. 김혜정 학생은 항상 비상약품 가방을 메고 다니며 모두를 챙겼다는 칭찬을 들었다. 이 자리에 계시진 않지만 선교사님 두 분도 우리를 안내하느라 고생하셨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이 외의 모든 사람들도 너무 수고가 많았고 고생했다는 칭찬이 나왔다. 오늘로서 라오스에서의 모든 봉사활동이 끝나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고, 아이들을 보러 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봉사활동을 준비함에 있어서 라스트키퍼, 타임키퍼, 하스피, 정보검색자 등등 누구나 언제든지 책임감만 가지면 할 수 있는 역할을 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소통하는 사람을 정하는 것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문제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멋대로 남을 판단해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운데서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소통자’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이런 활동이 처음이기 때문에 모두 서툴고, 배워야할 점도 많을 것 이다. 이번 봉사활동 일정을 통해서 모두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17년 2월 9일 목요일
오늘은 방비엥으로 떠나는 날이다. 3일 간의 봉사활동을 끝마치고 드디어 한국인들이 라오스에서 가장 많이 가는 관광지가 있는 방비엥에 간다니 기대가 됐다. 준비를 마치고 짐을 챙긴 뒤 오전 7시 50분에 방비엥으로 출발했다. 미니버스를 빌려 13명의 인원이 모두 한 차에 탔다. 가는 길에 노래도 틀고 잠도 자면서 4시간이 걸려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에 있는 부티끄 호텔에 짐을 푼 뒤 복장을 갈아입고 액티비티를 하러 갔다. 먼저 구명조끼를 입고 안전모와 전구를 장착하고 동굴 탐험을 시작했다. 튜브에 몸을 누인 뒤에 밧줄을 잡고 동굴 속을 탐험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튜브를 타고 가다보면 동굴 윗벽에 황 색깔의 무언가가 보이는데 그게 금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게 진짜 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튜브에 몸을 의지한 채 둥둥 떠다니는 게 재밌었던 것 같다. 앞사람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느라 하도 줄을 잡아당겨 팔이 빠져 죽는 줄 알았다. 주변에 한국어가 많이 들렸는데 역시나 관광지까지 와서 힘들게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은 한국인들 밖에 없어 보였다. 동굴 탐험을 한 뒤에는 카약을 탔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노를 저으며 강을 따라 펼쳐진 라오스의 자연을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것 역시 팔이 너무 아팠다. 강이 꽤나 길기도 하고 괜한 경쟁심이 붙어서 노를 열심히 젓느라 타고 난 뒤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둘씩 탔기 때문에 같이 탄 사람들끼리 얘기도 많이 하고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카약을 타면서 외국인들이 해먹에 누워 쉬거나 열기구를 타는 모습을 봤는데 다음번엔 그걸 하러 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유롭게즐기러 왔는데 생각보다 활동들이 너무 격해 즐기기보단 지친 것 같았다. 힘든 액티비티를 마친 뒤 삼겹살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곳에 와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한국다운 음식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쌀을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동남아의 찰기 없는 밥이 아닌 한국의 찰기 넘치고 윤기 있는 밥이었다. 간만에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은 것 같았다. 밥을 먹은 뒤 방비엥 거리에서 쇼핑을 했다. 옷과 기념품, 과일을 사고 학생들끼리 마사지를 받으러갔다. 비엔티엔보다 별로였는데 값은 1.5배여서 역시 관광지구나 싶었다. 한국인 상대로 물건 값 사기를 많이 치는 것 같았다. 쇼핑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지막 밤인 만큼 수다를 떨다 잘 생각이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모두 잠들었다. 이 날이 라오스에 온 날 중에 가장 힘든 날이 아니었나 싶다. 페인트칠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 보다 더 많은 체력이 소모됐다. 그래도 또래들과 함께 여행 다녔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20대에 좋은 추억을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곳에 있다 보니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하루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일 블루라군을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마지막까지 모두 아프지 않고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길 바란다.
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오늘은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동굴과 카약킹의 여파 때문인지 팔이 아파왔다. 오전에 호텔 조식을 먹고 드디어 블루라군으로 출발했다. 불루라군에 도착하니 왜 이곳이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관광지인지 알 것 같았다. 작은 골짜기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수심이 4~5m나 되는 푸른 석호가 너무 아름다웠다. 물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고 주변의 자연 경관이 꼭 요정이 나올 것 같았다. 바로 물에 들어가 놀고 싶었지만 짚라인을 하기로 한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 벨트와 안전모를 착용했다. 나무막대기 사용법을 배운 뒤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에 오르고 보니 과연 저 줄이 우리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짚라인을 타다 떨어지면 바로 사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곳 까지 와서 이 정돈 하고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고 차례차례 짚라인을 타기 시작했다. 타보니 생각보다 너무 별게 아니라 시시했다. 짜릿함은 있었지만 짜릿함을 즐기기엔 너무 짧은 순간에 슝하고 지나갔다. 몇몇은 타기 전에 울기도 했는데 몇 번 타고 난 뒤 모두 울음을 그쳤던 것 같다. 짚라인을 마치고 마지막에 줄을 잡고 낙하하는 단계가 가장 스릴 있었다. 진짜사나이란 프로그램에서 본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줄 하나를 잡고 아래로 뛰어내리라니, 이걸 왜 전쟁터도 아닌 관광지에서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몸이 붕 뜨다가 멈추는 게 정말 재밌었다. 이렇게 짚라인 체험을 하고 난 뒤엔 다이빙도 하고 뗏목도 타면서 물놀이를 했다. 다이빙 영상을 많이 찍었는데 갔다 와서도 가끔씩 영상을 보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수영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은 뒤에 블루라군1로 이동했다. 이곳이 바로 꽃보다 청춘에서 손호준과 유연석이 다이빙하며 놀던 그 곳이었다. 블루라군3에 비해 다이빙대 높이가 많이 높았다. 그 높이에서 뛰었다가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이빙을 포기했지만 박진성 선생님께서 뛰어내리셨다. 나머지 학생들도 한 단계 낮은 높이에서 다이빙을 했다. 즐겁게 놀고 난 뒤 씻을 시간과 공간 부족으로 10분 동안 6명이 씻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씻고 난 뒤에 짐을 챙겨 바로 비엔티안으로 향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4시간이 걸려, 차에서 노래도 듣고 수다도 떨면서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쇼핑센터에 들려 쇼핑을 했다. 라오스에서 본 쇼핑몰 중 가장 크고 고급스러웠다. 라오스 돈은 한국 돈으로 환전이 안 되므로 마지막 쇼핑지인 이곳에서 모든 낍을 써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눈에 띄는 대로 다 집어 담았다. 맥주, 과자, 헤어 팩 등등 과 미니소의 여러 생활 용품들을 사고 피자집에 들려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뒤 공항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생각보다 늦게 도착해서 비행기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다. 공항 앞에서 쇼핑센터에서 산 물건들을 캐리어에 빠르게 정리해서 넣은 뒤 인천 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기 전 비행기에선 모두 떠들고 놀았는데 5일 동안 제대로 잠도 못하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모두 지쳤는지 다 곯아떨어졌다. 근데 정말 짜증나게도 우리 좌석은 비상구 좌석이라 등받이가 안 젖혀져서 오는 내내 자세가 불편해 죽는 줄 알았다. 미니소에서 급하게 산 목 베게가 없었다면 목 디스크를 달고 왔을 것 같다. 올 때도 등받이가 안 젖혀졌는데 왜 매번 이런 좌석을 주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모든 일정 동안 특별히 아픈 사람 없이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음에 감사하다. 이번 봉사활동 일정 동안 즐거운 기억도, 안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모든 과정 속에서 모두들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확신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 구성원들로 팀을 이루게 한 것 또한 그분의 뜻일 것이기에 감사하다. 처음 해외 봉사활동이라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모두들 고생했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남길 바란다.